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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자 2300만원 , 창피하지만 공개하는 나의 실패기

hosunhwang 2023. 10. 25. 16:47

1

평소처럼 바쁘지만 게으르게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정말 일을 많이 하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다 생산성 없는 자질구레한 일들이었습니다.  
끝난 일에 줄을 긋는 재미가 있습니다. 
많은 일을 처리하면 뭔가 열심히 산 것 같은 느낌이 나서 기분이 좋습니다. 
막상 진짜 해야 할 일은 미뤘습니다. 
중요한 작업을 우선순위로 해야 하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들은 대게 집중력이 필요하고 에너지가 많이 들어가서 하기가 싫습니다..
자질구레한 일들을 처리하면서 자기 스스로에게 게으름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5개월째 손익계산서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손익계산서는 회사의 성적표입니다. 
손익계산서를 볼 때면 마치 시험 후 성적표를 받는 것 같습니다. 
조마조마합니다.  
저는 마치 시험 성적표를 부모님께 숨기는 학생처럼 손익계산서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간간히 살짝 불안감이 들 때가 있었긴 했지만, 
매출액만 확인하고, 별 일 있으려나 하고 그냥 그렇게 할 일을 미룬 채 지내왔습니다. 


 

2

5개월이 지났을 어느 날, 이제는 더 이상 미루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날은 그동안 미뤄왔던 손익계산서를 만들기로 하였습니다. 
그렇게 손익계산서를 확인해봤는데.. 처음에 보고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올해 1월 부터 5월까지의 총 손익이 거의 -2400만원이었습니다!
아무리 경영을 잘못해도, 이렇게 2000만원이 넘게 적자가 나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에이 설마...ㅋㅋㅋ 뭘 하나 빼먹었겠지 ㅋㅋ"
제가 잘못 만들었나 해서 하나하나 다시 다 꺼내서 뒤져봤습니다. 
자료 다시 조회하고, 아무리 다시 계산해도 이렇게 나옵니다.
손익계산서의 값은 정확하였습니다..
뒤통수에서는 따가운 땀방울이 흘렀습니다. 

;;

 

 

3

-2400만원이라는 손익계산서를 인정을 하니, 완전히 패닉상태에 빠졌습니다. 
사업이 성장하기는 커녕 역성장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많이 일했는데 적자를 보다니..! 그럼 대체 나는 5개월동안 뭘 한건가...' 

허무했습니다. 

머릿속에서는 "망했다"만 되내고 있었고
해결 방법을 떠올릴 수 조차 없었습니다.

뇌가 완전히 정지해버렸습니다. 

뭘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잠이나 자려고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습니다. 그런데 불안감 때문에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답답해서 밖에 나가서 좀 바람을 쐬어볼까 했는데, 하필이면 그 당시에 왼발 가자미근이 파열되서 깁스를 하고 있었습니다. 나가서 걷기도 힘들었습니다. ㅠ

차타고 한강에 가기로 했습니다. 물을 보면 마음이 좀 편해질 것 같았습니다. 한강에 가서 물을 보니 역시나 마음이 차분해졌습니다. 그렇게 마음을 좀 가라앉히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4

다시 정신차리고 해결 방법을 찾기로 했습니다. 
먼저 적자를 만든 원인을 분석하였습니다. 
지출과 수입의 상세한 내역을 보며, 불필요한 비용과 수익성을 낮아지게 만든 지표를 찾아냈습니다.

적자를 만든 원인은 '판매가격', '매출원가', '광고비', '인건비'와 '창고 관리' 때문이었습니다.
한가지의 특정 비용이 갑자기 엄청나게 올라서 수익성이 나빠졌기 보다는 
사업의 규모가 커지면서 전체적인 비용이 조금씩 올라가니
이전만큼 수익성이 안 나옵니다. 

이전에 수익성이 잘 나온 이유는 저를 갈아 넣은 것을 계산하지 않아서였습니다..!

사업의 전면적인 변화가 필요했습니다.
수익은 최대로 나오게 하고 비용은 최소가 되게 끔 조치를 취했습니다. 
다음과 같은 조치를 하였습니다. 


자체 창고 없애기

품목을 늘렸습니다. 새로운 공장의 상품도 등록하고, 세트 상품을 만들고, 단품으로 상품을 쪼갰습니다. SKU(상품 최소 분류단위)는 계속 늘어 그맘때쯤에는 SKU가 700이 넘었습니다. 저의 자체 창고는 8평이었습니다. SKU당 보유 개수는 적어도, 8평이라는 작은 공간에 700 종류가 넘는 상품을 보관하는 것은 공간 관리가 쉽지 않았습니다. 선반에 겹쳐서 놓게 되고, 깔끔히 정리가 안되어서 상품 보유 현황도 알기 힘들었습니다. 

또 로켓배송으로 팔리기 시작하니 창고 일이 많아졌습니다. 재고 관리가 안되서 자체적으로 바코드 부착하며 재고전산화를 하려고 시도했습니다만 시간만 엄청 소모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때 저는 창고를 직접 관리하는데 시간과 에너지를 빼앗겨서 사업 관리를 소홀히 하게 만들었습니다. 

자체 창고를 운영하는데 신경을 많이 써야하고, 재고 전산화도 안되어서 기존의 자체 창고는 접었습니다. 선반은 중고로 팔고, 창고는 부동산에 내놨습니다. 

그리고 물류대행업체에 위임하였습니다.
자체 창고 운영하는 것과 비용은 거의 비슷한데, 일은 확 줄었습니다. 
보관료가 고정비에서 변동비로 바뀌었습니다. 안정재고를 최소한으로 구비하고 팔린만큼만 다시 채워넣으면 주문량에 따라 보관료가 늘어나고 줄어들게 할 수 있습니다. 기존 창고 임차료와 비슷한 수준으로 보관료가 나왔습니다. (창고 임차료: 30만원, 물류대행업체 보관료:31만원) 재고 수량관리만 잘하면 기존 창고보다도 더 적게 나오게 할 수 있습니다. 어떤 달은 15만원도 나온 적 있습니다.


매출원가 줄이기

재고 현황 파악이 안되니, 어떤 재고가 얼만큼 있는지 파악이 힘들어서 매 발주마다 과매입하게 되는 경향이 생겼습니다. 

전년도 말쯤에 로켓그로스에 들어갔습니다. 품목도 늘어난데다가 창고도 하나 더 생겨서 재고관리가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로켓그로스에 재고를 넣으면 매출이 꾸준히 나왔고, 운영 경력이 조금 쌓여서 그런지 방만해졌습니다. 
"로켓그로스에 재고 넣으면 팔리겠지 뭐~"
라는 생각을 갖고, 공장으로부터 마구 재고를 매입해서 채워 넣었습니다. 
창고가 하나 더 늘어나니 구비해놔야 할 재고도 같이 늘어났습니다. 

무리하게 늘린 상품수를 줄이기로 했습니다. 잘되는 소수의 상품들에만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물류 대행 업체에 맡기니 재고 현황이 전산화가 되어서 발주도 딱 필요한 만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판매가격 올리기

그동안 판매가격을 너무 싸게 팔았습니다. 판매량 자체는 나쁘지 않은데 이익이 안납니다. 
로켓그로스 비용구조를 모르고 들어가서 판매가격 결정을 잘 못했습니다. 
이때 손해를 보면서 판매를 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로켓그로스 입점 시작부터 급하게 했습니다. 
그 시기 매출이 떨어지니 시작하여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막 시작했습니다. 

판매가격을 인상하면 바로 수익성이 올라갈 겁니다. 그러나 판매가격을 올렸다가 판매량이 떨어지면 매출이 떨어질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매가격을 17% 더 인상을 했습니다. 가격을 인상하면 경쟁사의 최저가보다 비싸집니다. 그러나 지금 마진 수준으로는 광고비 외의 다른 비용들이 부담스럽습니다. 나가는 비용을 고려하면 17%를 더 인상한 가격이 마진 구조가 적절합니다. 

 

광고비 줄이기

상품을 쪼개고 조합해서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 다 광고를 해왔습니다. 자잘하게 조금씩 광고비가 낭비되고 있었습니다. 이런 것들이 합쳐져서 광고수익률을 악화시켰던 것입니다.  

그리고 또 초창기보다 비용이 올라갔으니 손익분기가 되는 광고수익률(ROAS)을 보다 더 높게 잡았어야 했습니다. 이익은 안 본 채 매출만 보고 그냥 계속 돌려왔습니다. 

소수의 상품이 대부분의 매출에 기여합니다. 성과가 안 나오는 상품은 광고 진행을 멈췄습니다.   


인건비 줄이기

사업이 가파르게 성장해왔습니다. 제가 해오던 것을 계속 반복하면 복사하듯 커질 것 같았습니다. 제가 하던 업무를 직원에게 맡기고, 저는 새로운 사업을 성공시킬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사업들을 시도했었는데 다 망했습니다.  

한창 매출이 잘 나올 때는 사람을 써도 괜찮았는데, 매출이 떨어지기 시작하니 인건비가 부담이 되었습니다.  인건비는 고정비 중에서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기본 고정비가 올라가니 일정 수준 이하로 매출이 떨어지면 안 되어서 사업을 공격적으로 운영하는 경향이 생겼습니다. 인건비라는 늪에 빠진 겁니다. 인건비를 지급하기 위해 매출을 올리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처음부터 규모에 맞지 않았는데 성급히 직원을 쓴 것 같습니다. 
미안해서 입이 잘 안 떨어졌지만 지금까지 1년반 동안 같이 일한 직원에게 더 이상 같이 일하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일은 정말 잘해줬지만 수지가 맞지 않아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직원이 하던 전화상담은 CS대행업체에 맡겼습니다. (월 30만원)



5

이렇게 비용 구조를 바꾸고, 가지고 있던 재고를 많이 정리했습니다. 비용을 대부분 변동비로 만들고 고정비는 100만원 이하로 나오게 줄였습니다. 그 이후로는 더 이상 적자는 발생하지 않았고  2개월이 지났을 무렵에는 적자에서 흑자로 넘어갔습니다!!

이렇게 보면 왜 이렇게 바보같나, 왜 알아차리지 못했나 생각이 들지만 
일이 많아지면 당연한 것도 놓치는 것들이 많아지고, 그 안에 들어가 있으면 시야가 좁아집니다. 
사업 초창기의 분들도 규모가 커지기 시작할 때 흔하게 겪으실 수 있을만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꼭 주기적으로 손익계산서를 확인하셔서 저와 같은 불상사는 굳이 겪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이번 일로부터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앞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경영 방식을 좀 바꿨습니다. 
(다음 글 에서)